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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리뷰

로맨스 영화 추천,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<화양연화>

<화양연화>

In The Mood For Love, 2000

 

* 홍콩의 한 아파트로 동시에 이사오게 된 기혼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.

 

* 얼핏 들으면 너무 막장아니냐 싶겠지만,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질(수도 있는) 영화. 주변인들은 철저히 주변인으로만 존재하며(심지어 차우의 아내와 리첸의 남편까지도 제대로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.), 영화는 오로지 두 사람만의 모습과 감정에 집중한다.

 

* 아주 문학적인 영화다.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서,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어보지 않으면 갑자기 인물이 왜 저러지 하고 의아할 수 있다. (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필자가 그러했다.) 한 번 두 번 다시 볼수록 더 매력적인 영화. 마치 찻물같다.

 

+ 가장 정상적인 포스터로 뽑아왔다. 다른 포스터들을 보니 이 아름다운 영화를 완전히 에로 영화로 만들어놨더라!


내맘대로 뽑은 명장면 #1.

 

* 배우자의 외도를 모른척 하고 있었던 차우와 리첸이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장면.

 

* 차우와 리첸은 서로에게서 배우자가 가지고 있었던 물건을 발견한다. 핸드백과 넥타이. 흔한 물건이었다면 계속 모른척 할 수 있었지만, 구하기 힘든 해외수입품이었던 것이 슬픈 현실. 둘은 배우자의 외도 상대가 서로의 아내와 남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.

 

* 이후 두 사람은 괘씸한 마음을 품고 배우자들의 불륜을 연기하지만, 머뭇거리는듯 가까워진다. 사랑의 시작점.

 

 

내맘대로 뽑은 명장면 #2.

 

"당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떠나야해요. 같이 이별연습을 해 봅시다."

"다신 전화 않겠소."

"......"

"가만. 이건 나 때문에 한 거잖아요. 연습인데."

 

* 이별을 연습한 리첸이 차우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

 

* 이 영화는 단조로운 기조를 유지한다. 우리 머릿속에 박혀있는 '불륜'이란 막장의 향기는 영화 전반에 깔린 적요 속에서 희석된다. 네가 내 남편(아내)을 뺏었냐고 머리채를 쥐어뜯는 장면(주먹다짐을 하는 장면)도, 불륜을 눈치챈 주변 사람들의 노골적인 수근거림도 존재하지 않는다. 하지만 유일하게 그 기조가 흔들리는 순간을 뽑으라면 바로 이 장면.

 

* 차우에 비해 아주 소극적이었던 리첸. 그녀는 선을 넘을 듯 넘지 않으며 '우리는 그들과 다르다'며 자신을 합리화한다. 하지만 이 이별 연습을 통해 리첸은 애써 외면해왔던 깊은 사랑을 깨닫는다.

 

 

내맘대로 뽑은 명장면 #3.

 

"옛날에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줄 알아요?

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, 거기 구멍을 파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는 진흙으로 봉했다 하죠." 

 

* 앙코르와트를 찾은 차우가 돌에 난 구멍에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는 장면.

 

* 엇갈린 두 사람이 나온 후 이어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. 어떤 내용을 속삭였는지까진 알려주지 않아 더 여운이 남는다. 아스라한 사랑의 기억.

 

* 후에 차우가 속삭였던 구멍에서는 풀이 자라난다. 이것을 재회의 가능성이냐, 끝난 사랑이냐로 보는 의견이 때때로 나뉘는데, 정답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차우의 마지막 독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.

 

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.

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지만,

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.


여담>

+분위기로 압도하는 영화. 별다른 서사는 모르겠고, 영화 전반을 울리는 묵직한 첼로의 음율과 아름다운 영상미만으로도 다했다. 미장셴(화면 내의 모든 것이 연기한다는 관점에서의 공간 연출이라 하더라)이 너무 강하여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도 있다.

 

+영화의 말미엔 '화양연화'라는 노래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데, 이것은 리첸의 남편이 아내를 위해 신청한 곡이었다. 이별 후,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마냥 의자에 앉아있는 차우와 리첸은 이 곡을 듣는다.

 

+장만옥의 치파오 자태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. (무려 26벌을 갈아입었다 하더라) 이 영화는 장만옥의 인생에 있어서도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. (단순한 관점이지만서도)