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사바하>
Savaha: The Sixth Finger, 2019
*신흥 종교 비리를 파헤치는 박 목사가 '사슴 동산'이라는 새로운 종교 단체를 조사하면서 충격적인 진실들을 마주하는 이야기.
*영화는 전반적으로 불교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, 그 서사는 기독교(성경)에 뿌리를 두고 있다. 성경 속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니. 찾아보니 장재현 감독.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영화가 <검은 사제들>보다 더 좋았다.
*신천지로부터 항의를 받아 녹음 작업을 다시 했다고 한다. 초반에 박 목사 역의 이정재 배우가 신흥 종교를 쭉 나열하는 장면이 있는데, 그 과정에서 '신천지'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고. 여기서 이상한 점은 신천지가 항의한 시점이 최초 시사회가 열리기 전이었다는 것. 어마어마한 정보력이다!
스포일러 주의
내맘대로 뽑은 명장면 #1.
"하늘은 너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이라."
"보아라. 이제 짐승은 날개를 달고"
"다시, 태어나리라."
* 여중생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김철진의 투신장면
* 사진 속 인물은 김철진에게 자살을 종용했던 정나한. 그는 김철진의 투신을 차 안에서 직접 지켜보며 함께 예언을 왼다. 종교적인 신념하에 수많은 여중생들을 죽여온 이 둘은 밤마다 귀신을 보고(생김새를 꽤 무섭게 뽑았더라), 죄책감에 악몽을 꾼다.
* 위의 대사들은 마치 기독교의 주기도문처럼 중얼중얼 읽힌다. 김철진과 정나한이 한 명씩 돌아가며 대사를 치는 방식. 마지막 대사는 같이 하며, 김철진은 그대로 투신자살한다. 그릇된 신념이 이들에게 얼마나 깊숙히 내재되었는가를 보여준다.
내맘대로 뽑은 명장면 #2.
* 정나한이 창고에 갇혀있던 '그것'과 마주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장면.
* 귀신이라고 불렸던 '그것'은 몸을 덮고 있었던 흉측한 털을 벗어던지더니 흡사 부처님의 자세로 고요히 앉아있다.(물론 비주얼은 부처님과 아주 거리가 멀다.) 대머리에 육손을 한 그것은 자신을 '울고있는 자'라고 소개하며(성경적인 요소가 있다.), 사라져야 마땅한 뱀은 도리어 '사슴 동산'의 교주 정제석이라 밝힌다.
* 여기서 '그것'이 자장가를 불러(그것도 가장 흔한 종류의 자장가였다.) 정나한에게 혼란을 주는 장면은 투머치였다. 혹시 성모 마리아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면 할 말이 없으나, 분위기로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이 사실.
내맘대로 뽑은 명장면 #3.
* 육체를 이겨낸 교주 김제석의 최후. (사진은 패스)
* 중간에 '불교엔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. 굳이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욕망과 집착의 표현이 악일 뿐이다.' 라고 흘러가듯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. 육체를 이겨냈으나 영생에 집착하여 자신을 해할 존재를 악이라 이름붙인 김제석은, 사실 그 모든 것이 본인의 욕망과 집착일 뿐이라는 것을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.
+이에 더하여 1.
* 금화와 '그것', 1인 2역을 해낸 이재인 배우.
* '그것'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캐릭터인 것 같은데, 무리없이 역을 소화해냈다. 김제석이 주장하듯 '악'같기도, 가부좌를 튼 부처님같기도 한 '그것'은 뱀을 깔고 앉아 육손을 활짝 펴 낸다. 소름이 쫙 돋는 순간이다.
+이에 더하여 2.
"요셉아, 크리스마스가 즐거운 날이니? 사실 이 날은 너무 슬픈 날이라고. 아기예수가 태어나기 위해 베들레헴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었거든.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동방박사의 예언을 듣고, 헤롯왕이 심히 노하여 사람들을 보내 베들레헴과 그 지역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그 때 기준으로 두 살부터 그 아래로 전부 죽이니......"
* '사슴 동산'의 실체를 파헤치며 김제석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박 목사와 고요셉. 둘은 티베트의 예언가 네충텐파를 만나고 오는 길에 차에서 대화를 나눈다. 때는 하필 캐롤이 울려퍼지는 성탄절. 영화는 노골적으로 서사를 성경과 연결시킨다.
* 단순히 이야기를 비교해서 연결짓자면 다음과 같다.
아기예수 - 그것
헤롯왕 - 김제석
동방박사 - 네충텐파
유대인의 왕 - 김제석의 원수(뱀)
목숨을 잃은 베들레헴의 수많은 아이들 - 영월에서 태어난 99년생 여자아이들
심히 충격적인 비유가 아닐 수 없다.
여담>
+ 내용자체가 쉽지 않은만큼, 설명이 친절한 영화다. 하지만 그것이 박 목사의 눈을 잘 통했다기보단, 구구절절 말을 통했다는 부분이 아쉽다. 갑자기 튀어나온 그 이름 어려운 예언자는 웬말인가. 하지만 영화 중후반까지 차근차근 쌓아올린 서사가 괜찮고, 몰입도가 좋았다.
+ 경계를 허무는 영화다. 종교 간의 경계는 말할 것도 없다. 앞선 비유를 살펴보자면 이 영화가 허물고자 하는 경계는 한도가 없다. 보수적인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조심스레 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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